부산전자도서관 대여;;
63세의 작가가 74세의 주인공 모모코씨의 노년의 담담한 일상을 그려낸 소설;
문체가 훌륭하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 상황이, 내용이 곧 다가올 나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너무 자연스레 몰입이 되었다.
모모코는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왔는데도 노년에 외롭다.
사이가 원할하진 않아도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손녀도 있다.
그런데도 외롭다.
난 아무도 없다. 있지만 내가 외면하고 있다.
나의 노년은 아마 말도못하게 외로울것이다.
미리미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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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떤 삶을 살건 고독하다.
쭉 마음속에 있는 건 굳이 기억해 내지 않아도 된다. 다른 것, 다른 것을 생각해 보자.
슈조. 우리는 길 위의 사람들이야. 무슨 수를 써도 현재를 사는 나라는 한계. 너라는 한계에서 도망칠 수 없어. 그래도 인간은 변해 간다. 조금조금씩. 그러니 다가올 미래엔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남자와 여자의 삶이 존재할거야.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이 노트에도 잔뜩 적혀 있어.
대화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풀과 나무와 흐르는 구름마저도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대화가 가능하다. 그것이 모모코 씨의 고독을 지탱한다. 모모코 씨가 품은 비밀, 행복한 광기. 모모코 씨는 절실히 생각한다. 슬픔은 감독이다. 최상의 감동이다. 슬픔이 빚어내는 기쁨도 있는 법이다.
이별이 필연이라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슬픈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여자의 얼굴이다.
사랑이니 연애니, 그건 잠시 빌린 언어일 뿐. 그런 언어로 말하고 싶지 않다. 슈조는 내가 반한 남자였다. 푹 빠진 남자였다. 그럼에도 슈조의 죽음에 한 점 기쁨이 있었다. 난 오직 내 힘으로 혼차 살아 보구 싶와. 생긴 대루 멋대루 살아 보구 슾와. 그게 나야. 나라는 인간이야. 이 얼마나 죄 많은 인간인가. 하지만 나는 자신을 탓하지 않는다. 탓해선 안 된다. 슈조와 나는 이어져 있다. 지금도 이어져 있다. 슈조는 날 혼자 살게 하려고 죽었다. 배려다. 슈조의 배려, 저 멀리에 살짝 비쳐 보이는 거대한 존재의 배려다. 그것이 슈조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내가 찾은, 의미입니다.
죽음이 존재한다면, 견디기 힘든 상실의 아픔도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이 세상은 사실 슬픔으로 가득하다. 모른다는 말은 하지 말기를. 상실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앞으로 충분히 맛보게 될 테니.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누구 한 사람 사랑하지 않은 것이다.
모름은 모르기에 두렵다. 그러나 알기 위해 작정하고 아픔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건 더 두려운 일이다. 작각가 위대한 이유, 라고 생각해 본다. (역자, 정수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