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9일 일요일

2020-06 다음 생엔 엄마의 엄마로 태어날게 (선명)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이 참 좋다.
내가 고민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고민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글들도..
그래서 내가 그렇게 썩 문제가 있는 건 아님을 알게 해주고,
내가 그렇게 나쁜 상황은 아님을 알게 해주는 글들...

그런데 항상 이런 감동과 여운을 느낀 후가 문제다.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잠깐의 카타르시스가 전부이다.
그걸로 족하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내 맘이 편치 않다.

늘 그랬다. 그래서 내 삶도 늘 그대로.....

;;

사랑하는 이에게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화가 나는 그 순간 그를 사랑하는 것을 기억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스님이 되고 30대 중반을 넘어서니
언젠가부터 나를 혼내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내가 분명 잘못했는데 왜 아무도 날 혼내지 않을까......
스님이라서, 어른이라서, 조심스러워서
싫은 말을 안 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이 외롭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혼내고, 잔소리하고,
이래라저래라, 이것이 맞다 틀리다, 가르쳐주기 위해서는
그가 나를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내 삶을 함께 걱정하고 있어야 합니다.

스님을 뵙고
나의 슬픔이 어디서 오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순간 생각하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에 담고,
마음에 담은 순간 분별하려 하고,
분별하는 순간 몸이 움직이니......
나는 왜 그리 빠르게 움직였을까.
내가 너무 얕았구나.

쥐고 있는 이에게는 놓는 것이 수행이고,
놓기만 하는 이에게는 쥐어보는 것이 수행입니다.
견디지 못하는 이에게 견디는 것이 수행이고,
참는 것이 익숙한 이에게는 그만 멈추는 것 또한 수행입니다.

사람들이 절에 와서 편안함을 느끼는 건
여백이 많기 때문입니다.
바라보는 시선에 막힘이 없으니
마음이 자연스럽게 편안해지는 것이지요.
삶이 힘겹고 무겁다면
머무는 공간에 여백을 많이 만드는 것도
가벼워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소문은 현명한 자에게 이르러 멈춘다. (순자)
숲속 작은 동물들은 바람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치지만 숲속 큰 동물들은 그것이 바람 소리인 줄 알아 유유히 걸어간다. (숫타니파타)
첫 번째는 다른 사람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어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두 번째는 나에 대한 소문이 퍼질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고통이 없는 삶이 평범한 삶이 아니라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 경험하는 모든 일상이
평범함이었습니다.
아프면 우는 것이 평범한 것이고,
못 살겠으면 도망치는 것이 평범한 것이고,
높은 곳에 올라가면 자만하게 되는 것이 평범한 것이고,
두려우면 벌벌 떠는 것이 평범한 것이고,
삶이 각박해지면 마음이 모질어지는 것이 평범한 것이고,
삶이 여유롭고 편안하면 성격이 원만하고 이해심이 많은 것이
평범한 것이지요.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는 다름 아닌
"살고 싶습니다"였습니다.

그대는 살고자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아파도 괜찮습니다.
너무 오래 아파하지만 마세요.

"많이 싸워라. 힘이 있으니까 싸우는 거다.
많이 싸워야 죽기 전에 정도 더 드는 것이고."

"그래도 계시는 것이 안 계신 것보다 좋은 줄말 알아라."
안 계시다는 것.
그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데
겁도 없이 심술을 부렸던 것입니다.

내 능력이 되면 애달프지 않게 그리 해줄 수 있고,
내 능력이 부족하면 힘을 내서라도 그리 해주고 싶을 것이고,
정말 노력했는데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없을 때는
욕심을 내어 무언가 움켜쥐고 빼앗아서라도
자식에게 주고 싶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을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그들에게는 아마도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애달픈 마음이 숨어 있을 겁니다.

가끔 어떤 인연을 만나면
무척 버겁다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버겁습니다.
대화도 힘들고, 함께하는 상황도 힘들고,
그 사람을 이해하기도 힘들고,
그 사람과 하루하루 이어가기도 힘들고,
그럴 때면 생각을 합니다.
'이 사람 귀한 사람이구나.'
소중한 것은 반드시 그 소중함의 값이 있고,
귀한 것을 얻을 때에는 반드시 그 귀한 가치의 무게가 있습니다.
큰일을 마주할 때에는 평소보다 더 애쓰고 더 힘써야 하니,
더 어렵고 힘든 것입니다.
귀한 인연일수록 정성이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버겁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이지요.

언젠가부터 나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그 사람의 어깨를 먼저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지,
무엇을 책임지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어떻게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지......
입으로 말하는 달콤한 사랑이 아닌,
거칠고 모질고 표현이 서툴러도
상대의 고통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려는 이를 더 좋아합니다.
그것이 더 정직하게 사랑하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아버지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