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1일 수요일

잊혀진 질문 (차동엽)

믿음이 없으면 전부 납득하기엔 무리가 있다.
중간에 괜히 선택했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랜 사제생활과 풍부한 독서가 어우러져 굳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배제하더라도 충분히 하느님과 인간 그리고 나자신에 대해 돌아보기엔 감사한 말씀들이 가득하다.

어차피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내 입장에서는 선과 악이라거나 부활이라거나 영생이라거나 혹은 천국과 지옥의 개념따위는 관심 밖이다.
물론 인간으로서 선한 인간 악한 인간은 극명하게 나눠지지만.

자연의 일부로서 한 인간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사는가는 지극히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만족하고 지금 가진것에 만족하며 사는 삶도
보다 위를 향해 앞을 향해 매진하는 삶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 만족하는 삶이라면 어떤 삶도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그런 삶들을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스로 만족하는 삶 바꿔 말하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삶.
이것이 매우 쉽고도 어려운 명제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갈등이 생겨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 감상 따위 보다는 한용운의 시로 대신할까 고민하다가.....**

알 수 없어요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