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20일 수요일

보통의 존재 (이석원)

#2016-2


언니네이발관 보컬 이석원;
이걸 돈주고 샀는지 무료라서 다운받았는지 확실히 모르겠다.
글쓰기 연습할 무엇이 필요해 읽으며 받아 쓰기 시작하다가 끝까지 읽어버렸다.

연예인이므로 나보단 더 복잡한 삶이었고 이겠지만
내 나이의 다소 내향적인(?) 남자 어른의 생각이란 것이 너무 닮아 있는듯 느껴졌다.

가족간 사연은 누구나 비슷할테고
글 전반에서 느껴지는 건 아마도 연애와 결혼에 대한 약간은 어두운 시각이다.
그래서 어쩌면 더 내가 몰입해서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작가는 결혼을 한번은 해 본 것이 나와 차이라면 차이?

몇번 되새겼던 글은 밑에 첨부할테지만~
뭐랄까 예술가여서 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외부와 차단된 듯 보이는 그의 감정세계 또한 나한테는 무척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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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조언이란 남의 상황을 빌어 자신에게 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일탈이란, 아무도 모르는 머나먼 타지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나의 집, 아무도 들여다 볼 수 없는 곳에서 언제든 가능한 것이다.

절대로 드러나지 않을 만큼 안전한 비밀은 사생활이 되고 위험에 노출되는 순간 그것은 컴플렉스가 되어버린다.

컴플렉스에 맞닥뜨렸을 때 사람들은 그것에 대처하기위해 각양각색의 노력을 하게 되는데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사생활이 사생활에 머물러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비극이다. 나에겐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모든 과정과 비밀이 안전하게 보호된 채 내가 드러내도 괜찮다고 승인한 모습만 세상에 보여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위태로워질 때 우리는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는다.

잘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싸운 적이 있거나 내가 한 말 때문에 당신이 열 받은 적이 있었는지. 그런 적이 있다면 우린 친구예요. 좋아해서 그런 겁니다.

사람이 일평생 유년의 기억에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은 불행일까 행복일까. 그리움에 젖어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을 그리워한다는 것으로만 보면 불행일 것이고, 그리워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또한 행복일 것이다.

어른
자신에게 선물을 하게 되는 순간부터.

친구
누구를 만나러 갈 때 신이 나지? 그 사람이 바로 친구다.

그러나 해답을 알 수 없는 오랜 물음을 던진 끝에 어느 날, 내가 그토록 달아나고 싶고 회의하던 것들로부터 나와 내 삶이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인 순간, 나의 모든 아쉬움들은 그제야 비로소 위대한 유산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바로 잘나지 않은 내 가족과 친구들, 무엇보다 늘 부끄럽게 여기던 내 자신까지, 바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이 내게 건넨 힘과 그들과 함께했던 세월 덕택이었습니다. 비록 조금 뒤늦긴 했지만, 이제 내겐 이 화려한 유산을 마음껏 쓰는 일만 남았습니다.

‘본질을 아는 것보다, 본질을 알기 위해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것이 바로 그 대상에 대한 존중이라고.’

오노 나츠메의 『콩나물 부부』

그대
활짝 핀 꽃 앞에 남은 운명이 시드는 것밖엔 없다 한들   그렇다고 피어나길 주저하겠는가.

결국 있는 대로 드러내는 것이 가장 훌륭한 감추기이자 꾸밈이라는 진리를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체념에서 비롯된 행복이라면 그건 자신에 대한 기만이 아닐까.

회한의 눈물

나는 알았다. 정말로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게 사랑이구나. 하게 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게 사랑이로구나.

로망이란 어쩌면 단지 꿈꾸는 단계에서만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바라던 많은 것들이 실제로 내 것이 되었을 때, 상상하던 만큼의 감흥을 얻었던 적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중요한 건 이루어낸 로망보다는 아직 이루지 못한 로망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꿈을 품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연애란?
누군가의 필요의 일부가 되는 것. 그러다가 경험의 일부가 되는 것. 나중에는 결론의 일부가 되는 것.

동기가 불순하면 행위도 순수하지 못하다고 했던가. 고통으로 자극받아 피어난 사랑은 새로운 고통이 수혈되지 않으면 사그라지고 마는 것처럼, 이해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결코 상대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품 안의 애인
헤어지는 게 잘하는 것인지는 헤어져봐야 안다. 그게 문제다.

내가 늘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 사람들이 늘 내게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모두 내 탓이다.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들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연애는 패턴이다. 그리고 그 패턴은 다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바뀌면 패턴도 바꿀 수 있다. 쉽진 않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자신이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애. 안 그러니?   아무튼 기운 내. 너만 그런 건 아니니까.

더 늦기 전에 안 먹어본 것 먹어보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지. 만나보지 않은 사람도 만나고 해보지 않은 노래도 해야 한다.

컴플렉스
사람이 거의 일생 동안 컴플렉스의 지배를 받는 것, 다른 사람들의 평판의 지배를 받는 것, 어떤 종류의 것이든 공포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끔찍하다.   숨겨도 솔직해도 어쨌든 벗어날 수 없다는 건 더더욱 절망적.   그러나 어쩌면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에 대해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감정이 글을 압도하게 되면 정작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담아낼 수 없게 된다.
글을 읽는다는 게 결국 글쓴이의 생각을 엿보는 것이라는 주장도 그래서 가능하다.